23년 4월 말, 경영진에서 내가 책임지고 이끌던 신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나에게는 리더로서 마지막 임무가 주어졌다.
사업 종료하기
사업 종료는 거창한 게 아니라 서비스 종료와 조직 해체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가면 됐다.
사업 종료 절차를 밟는 데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회사 바로 옆에 살면서 일과 삶의 경계를 지우고 살았다. 그만큼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이 컸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나에게 ‘할 일이 없다’의 의미는 목표의 상실, 방향의 상실. 공허함, 당황스러움이었다. 출근해서 해야 할 일 해치우고 나면 남은 시간 내내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감각, 이 느낌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9년 전, 대학교 7학기 때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화학과 졸업 후 진로는 전문직 (의사, 약사) 또는 대학원 진학 후 연구직 밖에 없었고, 내 마음은 그 둘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떤 시스템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게 컸던 것 같다.)
‘다음 학기면 졸업인데 어떻게 하지?’, ‘지금껏 내가 뭘 보고 달려왔던 걸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의 소리가 작았다면 무시했겠지만, 이 때 들린 마음의 소리는 너무 강렬해서 이대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졸업학기를 앞두고 진로 고민을 이유로 휴학했다. 다양한 사람들 만나고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그 때 잡은 방향으로 지금껏 9년 동안 달려왔다.
9년 전 나를 구원했던 그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니 다시 움직일 힘이 났다. 그 힘을 사용해서 일단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돌이켜보면서 나름대로 정리하고 교훈을 추출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잊고 살던 질문을 오랜만에 다시 던졌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 2년을 정리하고 나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역시 생각 정리에는 글쓰기가 최고다. 당시 썼던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 대기업에서 신사업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리스크는 무엇인지
- 0 to 1이 무엇인지, 사업 초기 단계는 성장기, 성숙기와 무엇이 다른지
- 리더와 매니저의 차이는 무엇인지,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 - 과연 내가 이 모든 것을 하고 싶은지
내 안의 기회주의자는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순간의 유혹에 흔들린 것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고 얄팍한 계산으로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렸다.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 적당히 좋은, 나쁘지 않은 기회를 보고 덥석 물었다.
기회주의자는 외부의 기준으로 기회를 평가하고, 간 좀 보다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그들은 똑똑한 척, 합리적인 척하지만 사실 겁쟁이일 뿐이다.
이제 내 안의 기회주의자를 죽이고 다시 내가 원하는 걸 찾아야 한다.
‘적당히 좋은’ 기회의 기회비용은 ‘내가 정말 원하는’ 기회다.
good은 great의 가장 큰 적이다.
‘적당히 좋은’ 기회의 기회비용은 ‘내가 정말 원하는’ 기회다.
다음엔 계산기 두드려 보니 괜찮은 곳에 홀려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는 곳에 내 발로 갈 것이다.
거품, 덫들, 기회 대신 오는 유혹들
그 모든 것의 정면에서 다시 처음부터
붙잡아야지 잃어가던 것 (독 - E SENS)
떠나야 한다. 지금이다. 다시 원점에서 나를 돌아볼 때가 찾아왔다. 채우려면 비워야 하고, 돌아보려면 멈춰야 한다.
힘을 많이 줬으니 힘을 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이별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 백수의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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