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든 싸움을 이기려고 하는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은 깔끔하게 지면 된다. 억지로 이기려고 할 필요 없다.
Jun 09, 2024
왜 모든 싸움을 이기려고 하는가?
‘하 진짜 말귀 못 알아 듣네…’
백수 생활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요즘, 프리랜서 일 특성상 클라이언트와 종종 충돌하는 순간이 있다. 이번 주에도 A/B 테스트와 실험군, 대조군에 대해 설명하다가 클라이언트가 못 알아먹길래 위 멘트를 읊조렸다. (물론 속으로 ㅎ)
어디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프리랜서 뿐이겠는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 경험은 누구나 있다. 주로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 또는 설득이 안 될 때 속에서 답답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글이나 영상 콘텐츠가 천지삐까리겠지.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클라이언트와 잘 소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 같은 걸 찾아봤겠지만, 백수 생활 끝에 평정심을 장착하기로 결심한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상황에서 분노하는가?’
 
내가 내린 결론은 스스로 ‘검사’ 모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합의점을 찾기 위한 토의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승부로 인식해버리면, 법정의 검사처럼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싶어진다.
출처: 책 싱크 어게인 (Think again), 애덤 그랜트
출처: 책 싱크 어게인 (Think again), 애덤 그랜트
내가 검사 모드로 진입한 걸 어떻게 아냐고? 검사 모드로 진입하면 주로 이런 충동이 느껴진다.
  1. 상대방의 답변 듣고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옳고 그름 부터 따지고 싶은 충동
  1. 내가 옳다는 것을 성급하게 증명하고 싶은 충동
여기에 반응하는 순간, 상대방과의 승부는 시작된다.
 
그런데 모든 싸움을 꼭 이겨야 할까?
 
전략적으로 잘 지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따져보면 져도 잃을 게 별로 없다. 보통 져서 잃을 게 별로 없으면 이겨도 얻을 게 별로 없다. 알량한 자존심 정도? 나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여기에 낭비하기엔 너무 아깝다.
마침 이번 주 롱블랙에 황석희 번역가 인터뷰가 있었는데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1) 상대방의 말을 존중할 것, (2) 행간에 숨은 맥락을 잘 읽으려고 노력할 것, (3) 성급하게 번역하지 않을 것이에요. 어떻게 옮겨도 패배라는 뜻이죠. 번역은 원문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고요. 그렇다면. 완벽한 번역이란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면 어떻게 실패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넋 놓고 있다가 넉다운되는 패배 말고, 그 속에서도 뭔가 배워갈 수 있는 ‘최선의 패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클라이언트 측 상대방과의 싸움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이길 수 없다. 이기려고 할수록 답답함과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그냥 쿨하게 패배를 인정하면 모든 게 깔끔한데 말이다.
 
물론 지면 크게 잃는 상황도 있다. 이 땐 싸워서 반드시 이기거나, 이길 수 없다면 잘 피해야 한다. 이건 또 큰 주제라서 나중에 관련 사건을 겪거나 깨달음을 얻으면 글로 써야겠다. 오늘도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며 끙끙대는 많은 사람들이 쿨하게 최선의 패배를 하길 바라며…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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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둔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