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4년의 절반이 지났다. 이번 상반기의 키워드는 ‘기회’였다. 백수 생활의 두 번째 목표를 추구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백수 생활 시작할 때 세운 목표는 두 가지다. 1)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차분해지기 2) 차분해진 상태로 세상을 둘러보며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기
상반기 동안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고 이것저것 경험했다. 그러면서 ‘기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세 개의 깨달음을 정리하면서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1) 기회가 찾아오는 시점은 내가 정할 수 없다. 조급함을 내려두고 치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기회란 내 의도, 내 계획과 아무 상관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너무 당연해보이지만 백수 생활 시작할 땐 이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시점을 내맘대로 설 연휴 직후로 정했고, 설 연휴가 다가올수록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이벤트 (새로운 기회 찾기)에 마감일을 정해버렸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면의 열정이 반응하는 기회가 아니라 그저 ‘설 연휴 직후 시점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에 억지 열정을 끌어내서 도전했다. 결국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면서, 도전을 위한 도전이 되어버렸다.
사실 지금껏 내가 잡았던 기회는 내가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다. 기회는 항상 갑자기 찾아왔고, 나는 해볼 만하다 싶으면 도전했고, 내가 충분한 준비가 된 상태였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당장 첫 커리어부터 나는 대학원에서 데이터 분석 열심히 하면서 병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펍지에서 개발한 배틀그라운드가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펍지 (당시 블루홀 지노게임즈)에서는 병특으로 데이터 분석가를 뽑고 있었다.
그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준비하고 기다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다. 살다보면 기회는 언젠가 갑자기 또 찾아올 거라고 믿어야 기다릴 수 있다. 이 믿음이 깨지는 순간 기다림도 끝이다. 기회가 영영 안 찾아올 수도 있지만, 원래 인생은 희망으로 사는 것이다.
- 현재 상황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뭐든 너무 판단하고, 정의하고, 의미부여하다 보면 내 관점에 편견이 주렁주렁 달린다. 이건 어떻고, 저건 저떻고 하다 보면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럴수록 합리화와 의미부여를 멈추고 차분하게,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 현실적으로 불안과 조급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특히 현금 흐름. 자본주의 사회에 몸담고 있는 이상,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거나 거의 없는 상황이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현재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현금 흐름이 있어야 오히려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마음이 여유도 생긴다.
2)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귀인) & 기회는 딴짓으로부터 온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기회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즉, 기회가 찾아올 확률은 낮다. 그렇기에 확률이 낮은 상황에서 기회를 만나려면 시행을 많이 해야한다. 삼진으로 물러나더라도 일단 타석에 많이 서야 한다. 대타로만 뛰는 4할 타자 vs 매일 출장하는 2할 타자. 시즌 끝나고 나면 어떤 선수의 안타 수가 많을까? 당연히 매일 출장하는 선수의 안타 수가 많다. 기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회를 만나는 데 있어서 타석이란 새로운 사람 만나기&딴짓하기다. 새로운 사람 만나기와 딴짓하기가 도움이 되는 데는 두 가지의 메커니즘이 있다.
- ‘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사람과 딴짓이 필요하다. 내가 도전할 만한 기회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나’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면의 열정, 마음의 소리가 향하는 기회에 도전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 (딴짓)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인연과 경험이 나중에 새로운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당장 올 상반기만 봐도 명상센터 프로모션으로 공짜로 해봤던 싱잉볼 명상이 무역박람회로 이어졌고, 무역박람회에서 싱잉볼 팔다가 만난 사장님 덕에 이번에 무역업에 도전해볼 수 있었고, 무역업 경험과 백수 되기 전에 맡았던 프로젝트 덕에 프리랜서 일자리를 얻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3) 내 가치관, 신념과 충돌하는 기회는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버려야한다
아무리 업사이드가 커보여도 ‘나’와 안 맞는 기회는 기회가 아니라 유혹이다. 외롭다고 아무나 연인으로 사귀면 안되듯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고 아무 것이나 덥석 물어서는 안된다. 어떤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이게 원래 뭐였더라?’ 업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근본적 질문에 답하고, 내 가치관과 비교해봐야 한다.
2월~4월에 도전했다 그만둔 무역업 역시 ‘바뀌지 않을 것’, ‘본질’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봤다면 4월 중순 전보다 조금 일찍 그만둘 수 있었을 것이다. 3달 동안 품목 (패션, 화장품, 식품), 국가 (싱가폴, 인도네시아, 인도), 유통 (편집샵, 틱톡샵, 현지 소매상) 계속 바꿔봤지만 결국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고, 그게 이 업의 본질이었다.
무역의 본질은 관계 기반 장사다. 설비 같은 유형자산이 아니라 신뢰 쌓아둔 바이어 네트워크가 핵심 자산이고, 새로운 가치 창출보다 정보 비대칭에서 오는 차익거래를 노린다. 이 업의 본질과 내가 안 맞으니 계속 흔들리고 자꾸 억지로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기회를 찾는 데 있어서 업에서 ‘바뀌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만큼 경험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나면 나와 업의 fit을 맞춰볼 수 있다.
- 이 업의 핵심 자산은 무엇인가?
- 이 업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어떤 가치관,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 1, 2의 답이 현재 내 가치관, 신념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3번의 답이 Yes라면 당장 내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역량을 높이고 성과를 내고 싶은 내재적 동기가 생길 것이고, No라면 내가 역량이 있더라도 얼마 안 가서 내 가치관, 신념과 충돌하는 정체성 위기를 마주할 것이다.
결국 모든 도전은 ‘나’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늘 점심으로 맥도날드 먹으면 떡볶이 못 먹는 것처럼 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기회만 도전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내가 맥도날드와 fit 한지 떡볶이와 fit 한지 차분히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떡볶이 먹으니까 나도 떡볶이 먹어야 해’, ‘다른 사람이 12시에 점심 먹으니까 나도 반드시 12시에 점심 먹어야 해’,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 나는 둘 다 먹을 거야’ 같은 생각은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내 점심이고, 내 인생이다. 내 가치관, 내 신념, 내 현실적인 (특히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면 된다. 혹시 아나. 차분히 보다가 충분히 배가 고파지면 맥도날드, 떡볶이 외에 제육볶음, 짜장면, 타코 같은 훌륭한 제 3의 옵션이 생길지. 원래 기회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Share article